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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명학교 이야기

경명학교 이야기 4

by 경남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 453번지 2023. 8. 31.

령동회관 (1)

 

<사진> 1895년 부산 선교기지 사랑채에서 시작한 한문학교 사진. 왼쪽 뒤에 베어드, 그 앞에 서상륜, 그 앞에 앉은 부인이 베어드의 아내 애니이다. 오른쪽 뒤에 애니의 남동생인 아담스와 어학 선생 고학윤이 서 있다.

 

무디의 설교에 감동하여 선교의 꿈을 가지고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한 베어드는 델노르트대학의 교수로 있을 때 마침 선교사 언더우드의 형이 경영하던 타자기 회사의 후원으로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뜻을 같이하던 학우 애니와 결혼식을 마친 후 샌프란시스코항에서 한 달 동안 배를 타고 1891년 1월 29일 내한하여 1895년 12월 대구지부로 이동하기까지 부산 경남지역을 순회하면서 사역하였다.

 

1895년에 부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영주동 언덕에서 시작한 한문학교의 첫 한국인 교사는 서초시였다. 한 달 월급 7엔을 받았던 그는 노인이었으며 그의 아들은 일정한 봉급 없이 보조교사로 가르치면서 가끔 선물을 받았다. 위의 사진 오른쪽 앞줄에 앉은 청년이 서초시의 아들로 보인다.

 

아쉽게도 우리 경명학교의 사진은 한 장도 없다.

"1904년 봄에 문을 연 경명학교에도

월봉 16량(당시 쌀 한 섬에 5량 정도)을 받고

곽화서가 교사로 일했다. "

그런데 경명학교 1회로 입학하고 졸업한 김정오 학생의 기록에 의하면 부산의 서초시도 이곳까지 순회 사역하였다. 말하자면 부산 초량교회의 한문학교를 가르치던 교사가 이곳 이령교회의 경명학교 학생들도 가르친 셈이다. 교육내용은 한글, 셈하기, 성경, 노래 등이었고 마산의 창신학교가 아직 설립되기 전이라 마산 인근에서도 이곳까지 공부하러 왔다고 한다.

 

이곳 령동마을 출신인 김수업이 김해로 가서 오늘의 면장인 풍헌을 지냈다. 그가 부산에서 친구 서초시를 통해 예수를 믿고 친구 배성두와 함께 김해읍교회를 세우고 고향인 이곳에 살고 있던 삼종형수(경주金聖牙)에게 김해김씨 회비를 받으러 왔다. 김성아는 필자의 증조모로 30대의 이른 나이에 남편(김해金基哲)을 여의고 외아들만 바라보며 살다가 몸까지 자주 아팠다. 불안한 마음에 유명한 무당들을 불러 태어날 손자들만큼은 많기를 빌었다. 그러던 차에 예수를 믿으면 자손이 번성한다는 김수업의 말을 들었다.

 

김성아는 장날에 온다는 선교사를 직접 만나기 위해 손아래 동서와 함께 김해읍 장터까지 걸어서 갔다. 선교사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주소를 주고는 방문을 요청하였다. 선교사에게 받은 쪽 복음서를 치마끈에 품고 와서는 안방의 밥상에 올려놓고 정성을 드렸다. 처음에는 가족 몇이 예수를 믿고 나중에는 반대하던 아들 김세민까지 믿어 노세영 선교사의 지도로 영수로 임명받고 1897년 봄에 이령교회가 설립되었다. 이때를 전후로 영남의 주요한 초대교회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부산초량교회를 필두로 김해교회, 울산병영교회, 대구제일교회, 마산문창교회 등이 그러하다.

 

이곳 령동은 지금은 함안군에 속하나 그때는 칠원군에 속했으며 그것도 칠원에서 고개를 몇 개 넘어야 갈 수 있는 오지였다. 그래서 칠북면이라고 부른다. 이런 시골에 일찍 교회가 들어선 데는 인접한 낙동강의 밀포 나루와 당시 농경 사회의 혈연 중심 문화가 있었다. 김수업은 베어드의 한문학교 교사이자 친구인 서초시를 통해 베어드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베어드의 일기에는 김수업이라는 이름은 없고 ‘김종함’ 또는 ‘칠원 김영감’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상규 교수는 이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김정오가 1976년 1월 7일 자로 김수업의 증손자 김영재 교수에게 쓴 편지에는 “영재의 증조부님이 ‘풍헌할배’이신데 그 당시 김해 칠산에 살던 친우 배성두씨와 같이 예수를 믿으시고 고향 칠원 연개(령동) 일가 곳에 와서 전도함으로 교회가 처음 서고”로 적혀있다. 경명학교 첫 졸업생들은 교장 김세민의 아들 김정오, 조카 김응조, 생질 이순필, 김수업의 외손자 김수홍 등으로 6년만인 1911년 6월에 졸업하고 대부분 대구 계성중을 거쳐 서울의 대학에서 공부하여 등 훗날 모두 장로가 되었다. 김세민의 장남 김정오는 경성약전을 나와 대구 약사 1호 면허증을 받고 초대 민선 대구시의장을, 생질 이순필은 세브란스의전을 나와 마산지역 첫 서양식 의원인 학산병원장과 창신학교 한국인 초대 교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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