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피카 제일 장로교회(2)
미국 캔자스주에서 보낸 1년은 우리 가족을 더 가까이 만들어 주었다. 아내와 함께 시장도 가고 은행 도 가고 자녀들의 학교를 방문하여 교사를 만나는 등의 경험은 한국에서 해보지 못했던 귀한 경험이 되었다.
꿈 같이 보낸 1996년 1년 동 안의 미국에서의 안식년을 잘 마치고 귀국하여 고신대학교에서 다시 근무하자 얼마 안 있어 신학과의 황창기 목사님이 총장이 되셨다.
내가 어려서 창녕군에 있는 남지국민학교와 동포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지금 고신대학교 총장님의 사범대학 친구이셨다. 그 사실 때문인지 나를 학생처장으로 임명하셨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정 안에 있는 미륵암 문제와 학교 앞에서 짓기 시작하는 빌라의 설계가 고층으로 되어 바다의 조망을 해치는 문제로 데모가 계속 이어져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후부터 보낸 10여 년 동안은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모진 바람에 맞은 나뭇가지처럼 시들고 있었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교회에서 당회를 하는 중에 별일 아닌 것으로 화를 내고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가슴에 통증이 와서 복음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혈관 속으로 작은 카메라를 넣어 촬영하고는 심장 근처의 혈관이 약해졌다고 안정을 취하라고 하였다. 나는 교회의 장로직 1년 휴무를 신청하고 주일마다 시골에 가서 하루를 보내 면서 세상 떠난 삼촌의 별장에서 지나기로 했다.
사촌 동생들의 허락을 받고 마른 풀들에 감겨있는 방문을 열어보니 안에는 썩어서 내려앉은 나무들이 쌓여있었다. 하나하나 쓰레기들을 들어내고
"불에 태우던 중
낡은 가방 하나가 구석에 있었다. "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그 안에 옛날 문서 들을 묶은 두루마리가 있었다. 귀한 자료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아버 님과 교회사를 전공하시는 이상규 교수님의 제자로 인근 칠원에서 사역하시는 조규통 목사에게 전화하였다.

<도> 위의 사진은 그날 즉, 2013 년 4월 5일에 찍은 사진이다. 필자의 아버님께서 옛날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가방 안의 문서들이 오랜만에 시원한 바깥 공기를 마시자 그동안 갇혀있던 수많은 옛날이야기가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져 나오는 듯했 다. 그 별들은 100년 전 미국의 캔자스주 토피카에 있는 한 교회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참으로 생각할 수록 신기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곳 이령교회가 1897년 가을에 세워졌으니 그해 가을에 세워진 대구제일교회와 같다. 그때는 수년 전 대구에 땅과 집을 사서 터전을 마련했던 베어드 선교사는 이미 평양에 가 있고 역시 토피카 제일 장로교회에서 보낸 그의 처남 안의와 선교사가 사역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령교회를 세우신 증조할머님의 손자 김정오는 이 교회에서 1904년에 세운 경명학교를 6년 만에 졸업하여 1906년에 세운 대구 계성중학교에 입학해서 안의와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 정오는 계성중학교에 다니면서 안의와 선교사를 도와 동산병원에서 시작하던 개척교회에 출석하여 나중에 장로가 되었다.

<도> 삼촌 별장에서 발견된 문서 중에 교인 명부에 1900년에 믿었다는 성도의 이름도 있다. 이것은 매우 귀한 자료인데
"영남 지역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된 교인 명부"
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산골에 선교사들의 복음이 그렇게 일찍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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