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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명학교 이야기 3

by 경남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 453번지 2023. 8. 31.

토피카제일장로교회(3)

<사진> 건초더미 기도의 힘으로 1812년 2월 12일 미국 최초로 파송되는 해외 선교사 5인

어제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요즘 아이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게 뭘까 잠시 생각하려는데 목사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모르는 학생 들이 있습니다. "내가 경명학교 이야기를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옛날 우리 어른들은

꿈이 있었다"

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의 증조할머니께서 60 노인의 몸을 이끌고 이름만 들은 선교사를 직접 만나기 위해 함안 칠북에서 김해 장터까지 걸어가셨다는 이야기를 내가 어렸을 때 듣고 감동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늘 놀랍고 궁금했다.

더 놀라운 것은 비행기도 없던 시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찾아 그 넓은 태평양을 한 달이 넘도록 배를 타고 건너온 선교사들이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자 바로 이국의 땅을 향했다. 그들을 이 멀리까지 보낸 것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에게 누가 꿈을 주었던 것인가? 베어드와 그의 아내 애니. 아담슨과 그의 아내 딕 그리고 맥큔과 그의 아내 헬렌 등은 부산, 대구, 서울, 평양을 거쳐 조선 팔도에 경명학교와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에서 중학교 그리고 평양신학교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대학인 숭실대학을 설립하는 꿈을 실현하였다.

토피카 제일장로교회가 이들을 이곳에 보내게 된 것은 미국의 어느 강가의 한 건초더미에서 시작된 기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보다 오래전인 1629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오면서 시작된 미국 교회는 1730년의 1차 대각성운동을 계기로 부흥의 열기가 더해지다가 1808년 미국 동부 롱아일랜드에 살던 대학생 밀즈와 그의 친구들이 비를 피해 건초더미에서 기도하다 해외선교의 소명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교단 총회를 찾아가 자신들을 선교사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때 미국은 대륙확장과 전쟁의 시대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특히 미대륙 한가운데 위치한 토피카가 있는 캔자스주는 서부 개척이라는 토네이도의 중심에 있었으며 남북전쟁이 시작된 곳이다. 땅의 정복과 노예해방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목숨을 건 지옥의 터널을 지나면서 비로소 내면의 영적인 치유와 함께 고통에 신음하는 세상을 향한 소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소명을 높은 장대 위로 들어 올린 사람 중에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던 '무디'라는 이름의 한 보조교사가 있었다. 그는 문법 구사도 어눌한 한 젊은 구두 수선공으로 정식 교사가 아니어서 동네에서 전도한 아이들을 교회당에 들여오지 못하고 교회 마당에서 가르쳤다. 아이들이 많아지자 교회에서 의자를 몇 개 내어 주다가 나중에는 교회당 안으로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게 허락했다.

내가 다니는 부민교회 옆에 있던 백영희 목사가 담임했던 서부교회가 그랬다. 주일학교 아이들만 2,000명 이상 모여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라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던 때의 서부 교회 교사들을 보면 늘 무디 선생님이 떠 올랐다.

어린아이들에게 설교를 잘하는 사람은 어른들에게도 설교를 잘한다고 한다. 마침내 무디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가 되어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들이 있던 영국의 초청도 받았다. 1882년 무디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설교하자 수많은 학생이 은혜를 받고 그 대학에 다니던 귀족 가문의 7명의 학생이 중국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그로부터 4년 뒤 1886년 여름 미국 헐몬산에서 무디와 피어슨 박사의 '모든 사람이 가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가야 한다'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 100명의 대학생이 헌신하기로 했다. 대학생 베어드와 그의 여자 친구 애니는 이 선교의 불꽃 한가운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