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계시는 아버님께서 고모부 배동석의사(義士)에 대해 자료를 구해보라는 지시에 따라 인터넷을 찾는 중 고모부의 둘째 아들 되는 유위형님의 아들 중에 미국에 계신다는 분이 배씨 가족의 이야기를 작년에 책으로 출판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위 형님은 내가 어렸을 적에 종종 뵌 적이 있다. 말이 형님이지 나이가 아버지보다 많았으니 늘 부끄러워했던 나를 어렸을 적 부터 귀여워 해주신 것으로 기억이 된다.
나는 배동석 고모부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왜 고모부의 자녀들 중에 누군가 이 고모부의 훌륭한 일을 기록하지 않는지 늘 안타까와했었는데 역시 미국에 계시는 조카가 그동안 모은 귀한 자료를 가지고 책을 출판했으니 정말 다행한 일이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부산 대학병원 앞에 있는 에덴 서점을 찾아 그 책을 구입하여 시골에 가서 저녁에 아버님 어머님에게 읽어드렸다.
고모부가 김해에서 우리 고향인 함안 칠북에 까지 와서 고모와 첫선을 보는 장면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었는데 정말 꿈 같은 이야기였다. 그때 우리 할아버지 김세민 장로님은 천석꾼으로 묘사되었는데 고모부의 아버님되시는 배성두할아버지는 칠십대이셨고 우리 할아버지는 마흔대셨지만 서로 사돈을 맺는 장면에서 주고 받는 대화가 아주 멋지게 묘사되었다. 1894년 김해교회가 설립되고 우리 고향의 이령교회는 1898년에 설립되었고 김해에서 전도를 받았으니 당연히 배성두장로님이 어른이지만 우리 할아버지도 이에 지지 않으시려고 나름대로 딸을 당당하게 소개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김해에서는 신부집에서 가지고 오는 예물을 구경하느라 길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소달구지가 8대나 되었다니 나는 영화에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하여튼 우리 할아버지가 대단한 부자였던가 보다.
고모부는 대구계성학교에서 반일운동을 하여 퇴학을 당하고 세브란스 의전에서도 삼일만세운동으로 1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결국은 가진 고문으로 병을 얻어 출옥을 하자 곧 사망했다. 고모는 정신적 충격으로 말을 잊게 되었다. 내가 대구에서 고모를 본 적이 있는데 머리가 흰 노인이었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이 늘 있었다. 상해임시정부와 김좌진장군을 돕기 위한 자금을 우리 할아버지는 사위를 통해 대주셨다. 대통령감을 만들려든 할아버지의 꿈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사위를 보고 구들이 꺼지라고 내리치며 통곡하는 슬픔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이 작은 책 한권으로 지난 꿈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특히 감동을 받는 장면은 삼일 만세 운동을 파고다 공원에서 할려고 했는데 33인 모두 태화관에서 일본순사들에 의해 포위되자 기다리던 학생들이 독립선언문을 대신 낭독하기로 했는데 그 때 단상에 올라가 독립선언문을 읽은 사람이 다름 아닌 고모부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비록 사위가 대통령은 못되었지만 할아버지의 꿈은 더 크게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이렇게 후손들이 살아서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아직도 고모부는 우리의 마음에 멋있는 대통령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