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金純 : 1900 ∼ ?)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은 그가 창신학교 고등과에 수료할 시기였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 점차 전국으로 파급될 무렵 그의 사촌매형인 김해출신 배동석(裵東奭)이 서울의거 참가 후 마산으로 왔었다.
당시 세브란스의전 학생이었던 배동석은 2월 하순에도 李甲成의 지시로 내려온 일이 있어 두번째 마산에 왔던 것이다.
배종석은 창신학교 교사 任學讚에게 서울서 가져온 독립신문을 전하였다. 임학찬은 다시 김순에게 전해 주었다. 신문은 창간호로부터 15호까지였는데, 그 내용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식으로 가득차 있었다.
김순은 급우 韓又慶과 상의하여 학교서기인 李聖用에게 부탁하여 학교 등사기를 빌려 몇 몇 급우들과 며칠밤을 세워가며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 수천장을 등사하였다. 3월 21일 마산의거에 김순은 급우 팽삼진(彭三辰)을 비롯한 다수 학생이 유인물을 소지하고서 하오 2시 마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의 기적소리를 신호로 만세함성이 일시에 울려 펴지자 동료학생들은 독립신문과 선언서를 마구 뿌려 분노에 치뜬 군중을 더욱 기세를 올리게 하였다.
의거 후 관헌의 추적을 피해 여러 곳을 전전하다 웅천에서 임시로 교원생활을 한 뒤 대구로 피신하였다. 그 후 그는 궐석재판에 회부되어 1년 6월의 징역형이 선고된 일이 있었다고 하나 기록은 없다.
'자료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문서를 발견한 순간의 모습 (0) | 2014.12.16 |
---|---|
김정오장로님 육성녹음 (0) | 2014.07.28 |
배동석열사 (0) | 2012.10.21 |
시골에서 찍은 사진 (0) | 2012.10.21 |
'약국집 예배당' 독후감 (0) | 2008.09.22 |